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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에 대한 기록물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1-22 21:28
조회
4440


탐라에 대한 기록물들이다(좌로부터 삼국지 위지동이전 마한조, 삼국유사 황룡사구층탑조,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왕조, 삼국사기 백제본기 위덕왕조).

탐라는 제주도의 옛 이름이다. 또 탐라는 예전에 제주도에 있었던 탐라국을 지칭하기도 한다. 문헌에 따라 섭라·탐모라·담라·탁라 등으로도 표기되었다.

그 중 삼국시대부터 고려 및 조선시대까지 가장 오랫동안 불리어졌던 칭호는 탐라였다. 이 탐라의 어의에 대해서 조선 후기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후위서에는 섭라라 칭하였고, 수서에서는 담모라라 칭하였으며, 당서에서는 담라라 칭하였다.

또 탐부라, 탁라라 칭하였는데, 이는 모두 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방언에 도를 '섬'이라 하고 국을 '나라'라 하는데, 탐·섭·담 세 음은 모두 섬과 음이 비슷하니, 대개 섬나라를 이르는 것이다.'라고 일찍이 그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즉, '섬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탐라라는 명칭은 '고려사'에 의하면, 고종 16(1229) 2월 27일자에 '송나라 상인 김인미 등 2명이 모두 제주에서 표류되어 갔던 양요재 등 28명과 함께 왔다.'고 하여, 고종 때에 와서는 탐라라는 명칭이 이미 제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별초 정벌 이후 제주도가 원(몽골)나라의 직할지가 되면서 원나라에서는 제주라는 명칭 대신에 탐라 혹은 탐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제주도와 고려의 관계를 차단시켰다. 이후 충렬왕 20년(1294)에 제주가 고려에 반환되면서 다시 제주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1295, 충렬왕 21) 윤 4월 9일자에는 비서성 판사 최서를 보내어 제주 목사로 삼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탐라와 제주라는 두 명칭이 혼용되면서 조선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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