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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주(髙鼎柱)선생이 세운 창흥의숙(昌興義塾)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1-22 21:21
조회
3863


춘강(春崗) 고정주(髙鼎柱·1863~1933)

구한말 규장각(奎章閣) 직각(直閣) 벼슬을 지냈다.

그래서 보통 ‘고직각’이라고 호칭한다. (규장각 직각이라고 하면 요즘의 국립도서관장에 해당하는 직책)

직각의 임무는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서적과 왕실 문서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동시에 황자전독(皇子典讀)에 임명되었다. 왕자에게 각종 경전을 가르치는 임무였다.
그러다 보니 고정주는 의친왕 이 강(李堈·1877~1955) 공의 비서실장까지 맡게 된다.
그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자 벼슬을 내던지고 고향인 창평으로 낙향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절실한 과제임을 깨닫고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교육의 핵심은 신학문을 익히는 일이었다.
세계사의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고정주의 현손(고손자)인 광주대 고영진 교수가 정리해 놓은 장서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 양계초 지음), ‘동서양역사’(東西洋歷史, 玄采 번역, 1907),
‘만국약사’(萬國略史, 학부편집국 간행, 1895), ‘태서신사람요’(泰西新史攬要, 학부편집국 간행, 1897),
‘세계식민사’(世界植民史, 李埰雨 번역, 1908), ‘애급근세사’(埃及近世史, 朴殷植 지음, 1905),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玄采 번역, 1906), ‘5위인소역사’(五偉人小歷史, 李能雨 번역, 1907),
‘중등만국지지’(中等萬國地誌, 朱榮煥·盧載淵 번역, 학부편집국 간행, 1902), ‘중동전기’(中東戰記, 1899),
‘만국공법요약’(萬國公法要略, 商務印書局 간행, 1903), ‘외교통의’(外交通義, 安國善 번역, 1907),
‘진명휘론’(進明彙論, 李鐘泰 지음, 1905) 등이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책들이다.

그러한 사람이 전남 창평의 시골로 내려온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시작한 첫 사업이 바로 상월정이었다.
상월정에서 자신의 둘째아들인 고광준과 사위인 김성수, 김성수의 동생인 김연수가 첫 학생이었다.
얼마 후에는 송진우가 참여하였고 뒤를 이어 김병로·백관수가 간간이 출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비용 무료로 제공한 창흥의숙 ]

이 시기는 대략 1906년쯤으로 본다. 상월정에서 7~8개월 동안 몇 사람을 모아 공부시키다
이를 발전시켜 ‘영학숙’(英學塾)을 세운다.
영학숙이란 글자 그대로 외국어인 영어를 주로 공부하는 학교였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선생을 서울에서 모셔다 놓고 공부하였다.

영학숙이 다시 커져 1908년 창흥의숙으로 발전한다.
창흥의숙은 처음에는 창평 객사(客舍) 건물을 수리하여 사용하였다.
학생수는 5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초등과는 3년, 고등과는 6개월의 속성이었다.
교과 과목은 한문·국사·영어·일어·산술이었다.

창흥의숙은 창평학교로 개칭되었고 현재는 창평초등학교로 변하였다.
고직각이 창흥의숙을 열었을 당시에는 학생이 부족하였다.
학교에 오려면 단발하여야 했기 때문에 부모들이 이를 꺼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의병활동을 하다 순절한 집안 내의 분위기로 보아 단발한다는 것은 쉽게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흥의숙은 수업료는 일절 받지 않았고,
오히려 학교에 오는 학생들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입장이었다.
고직각은 만석꾼의 재산가여서 일체의 비용을 자비로 담당하였다.

학생이 결석하는 날이면 고직각은 하인을 학생집으로 보내 데려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초창기 창흥의숙 운영은 고직각의 열성적인 후원에 의하여 유지되었던 것이다.
창흥의숙에는 고직각이 데려온 ‘이표’라는 이름의 교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수학과 영어에 아주 능숙하였다고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이표는 조선인이 아니고 외국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조선사람으로서는 수학과 영어에 능통할 수 없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순천대 홍영기 교수의 연구(‘고정주. 근대교육의 선구자’)에 의하면
고재천(전 전남대 농대학장)과 재필(전 보사부 장관) 형제,
고재기(전 서강전문대 학장)·고재종(전 전남교육감)·고정석(전 산업은행장)·고윤석(전 서울대 부총장)·고광표(대창주식회사 회장), 해방후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용·문용·성용 3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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