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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髙適)선생의 제야음(除夜吟 제야에 시를 읊다)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1-22 21:36
조회
3995
제야음(除夜吟 제야에 시를 읊다)-고적(髙適)

旅館寒燈獨不眠
여관한등독불면

客心何事轉凄然
객심하사전처연  

故鄕今夜思千里
고향금야사천리  

霜?明朝又一年
상빈명조우일년

  
여관 차가운 등불 아래 홀로 잠 못 이루고

나그네 속마음 무슨 일로 이리도 처절한가.

고향서도 오늘밤 먼 곳의 나를 생각하리니

서리 같은 흰 머리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고적(髙適)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고말로의 현손(玄孫)이고, 의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고조기(髙兆基)의 손자이다.

고려 원종2년(1261) 과거에 급제했으며 탐라국 성주의 자격으로 정언, 현석과 함께 외교사절로 몽고에 방문한 것은 원종7년 12월이었다.

원종11년에는 청주종사관으로 원종을 따라 몽고를 다녀왔는데 그 때 지은 ‘관풍토국음시(觀風土國吟時)’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듬해에는 신의군 삼별초의 항몽반란으로 탐라가 어지워지자 유총관(留摠官)이 되어 민심을 안무하였다.

충렬왕4년(1278)에 조정에 들어갔다. 계속되는 병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여생을 보내기 위해 욕림지방으로 들어갔으나 충렬왕이 1294년 고적의 청렴 정직함을 듣고 사신 류희안(柳希顔)을 시켜 그를 불러 감찰어사로 삼았다.

그해 11월 탐라가 고려에 환속되자 성주인 고적과 그의 아들 여림에게 상을 내렸으며 성주직을 세습하도록 조치했다.

문장에 뛰어났던 그를 기려 당시 유림들이 영천에 옥천서원을 세워 영모재로 부르고 고적과 아들 여림, 세재(世在:상서공) 등 3부자를 배향했다. 청주 백족산(지금 청원군 가덕면 거암리)에는 고적을 추모하는 ‘단향각(壇享閣)’이 세워졌다.  


▒ 상세설명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 중서문하성에서 국사(國事)를 논의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이품 벼슬
*안무(按撫) :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어루만져 위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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